티스토리 뷰

 

 

고등학교 1학년때와 3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최규천씨.

 

본명보다는 별명이 입에 짝짝 붙어 최구달이라고 부르는게 더 익숙하다.

 

둘다 진성 덕후의 피가 흐르는지라 자기가 스토리쓰면 내가 그림그리기로 약속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나도 만화가가 되지는 못했고 구달군도 글쓰기로 먹고 살지는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8년 되던 2005년에 나는 남해제일고 교사로, 구달군은 산청에 있는 대안학교 교사로

 

만나서 술을 한잔 했었는데 그때는 둘다 미혼이었고 각자의 미래를 어떻게 꾸려갈건지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10년만에 만난 구달군은 버섯농장 사장이 되었고 나는 고성중앙고등학교로 전근온 상태였다.

 

우린 둘다 결혼을 했고 약간은 삶에 찌든,

 

그러나 아직 고등학교 시절 품었던 꿈의 편린을 가슴에 박고사는 키덜트들이었다.

 

5시에 만나 8시 30분까지 가열차게 대화를 나눴는데

 

그 대화의 내용 대부분은 국가 존립 가능성에 대한 절망감 토로였다.

 

10년전과 대화 내용이 이렇게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글을 쓴다는 구달군, 그리고 아직도 그림과 사진에 미련을 둔 나.

 

다음에 만날때는 시국에 대한 걱정보다는 글과 이미지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