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더듬어 무언가를 찾고 있는 답답함.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 속 여러가지 문제를 텍스트로 정리해 놓고 싶다.
1. 미술대학교 진학을 꿈꾸던 소년 시절이 있었다.
수능성적이 괜찮아 미술학원에서 무료로 입시미술 강습을 해줄테니
나중에 플랭카드나 한장 걸자는 제의를 받았다.
다행히 미술에도 재능이 없는 편은 아니었는지
늦게 시작했음에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빠르게 실력이 늘었다.
집에는 비밀이었던 미대 준비는 고3때 학교의 특별반이었던 수문재 자율학습에 불참했던 것이
알려지면서 백일 하에 드러났고 반대에 반대를 거듭하는 어머니를 설득하지는 못하고
사범대학 진학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역사교육과를 지망했던 이유는 그 학문이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는데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에 도움이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국, 영, 수 선생이 되어서는 그림을 절대 그릴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대학 시절 내내 어린 시절의 꿈을 버리지 못했기에 만화를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만화가로 데뷔하는 것이 너무 불투명한 미래였기에
군대를 전역한 나는 임용고사를 준비해서 교사가 되었다.
그래도 가슴 한켠에 있는 그림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 때 만난 것이 사진이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대학교 때 부터였지만 그것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자료 수집에 불과했다.
하지만 교사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그림을 계속 그릴 수는 없었고
빨리 결과물이 나오는 사진에 매력을 느끼고 집착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취미로만 찍었다면 참 좋았을 것인데
계속 가져왔던 이미지의 완성에 대한 욕망이 필요 이상으로 사진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림을 그릴 때와 다른 사진만의 제약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다.
사진 공부를 위해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사진을 보았고,
많은 강의를 들었으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몇년간 YES24 플래티넘 회원이었던 이유가 끝도 없이 사진과 인문학 서적들을 수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서 달려들어봐야 그것은 자기만족일 뿐
사진의 진수를 제대로 알고 싶은 욕망은 갈수록 강해지기만 했다.
사진학과에 진학하면 이 목마름을 풀 수 있을 것 같아
2010년 하반기에는 학교를 휴직하고 사진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지만
다음해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그 생각은 접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내 사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기 위해
본격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게 되었다.
아직도 답은 없다. 내 사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내가 사진으로 이루고 싶은 바는 대체 무엇일까?
2. 학교 사진을 찍고 있다.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기에 제일 찍기 쉬웠던 것이 학교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학교 사진을 찍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찍었던 것 같다.
역사를 배웠다는 것이 또 나에게 강박관념 하나를 심어놓았던 것 같다.
그것은 기록에의 집착이다.
글을 써야 할터인데 이미지가 더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결국
내가 있는 곳에 대한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게 지금 내가 학교 사진을 계속 찍고 있는 이유가 되었다.
반복적으로 기록하던 사진을 유의미화하기 위해 정리했다.
사진을 유목화하는 것은 찍는 것 만큼이나 재미있는 작업이었고
이렇게 묶인 사진들이 포트폴리오가 된다는 것은 뒤에 깨닫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학교 사진을 찍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큰 상도 받았다.
이 학교 사진은 평생을 찍어갈 긴 호흡의 작업이다.
페르낭 브로델이 말했던 장기지속의 역사를
내 사진 작업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기에 고민도 많다.
역사학도로서의 욕망, 사진작가로서의 욕망이 뒤섞여서 탄생하게 된 것이 나의 학교 사진이지만
역사 선생으로서 이뤄야 할 것과 사진작가로서 이뤄야 할 것이
아직 통합되지 않고 있기에 이 작업에서 분리된 나는 아직 사진가로서도
역사교사로서도 너무 미진한 부분이 많다.
학교로부터 벗어났을 때 나는 무엇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내게 들러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컴플렉스의 원천이기도 하다.
3. 손이 완전히 굳었다.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려본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타블렛을 잡고 그림을 그려보았다.
예전 감각이 기억나질 않는다.
왠지 슬프다.
사람은 발전하는 존재일 터인데
내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그림이라는 부분에서 퇴화를 계속 거듭하고 있다.
머리는 커지는데 그것을 풀어내야할 기술이 부족해진다.
아무 것도 모르고 치기어리던 시절 그려놓았던 그림을 보며 그 필력에 오늘의 내가 놀라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4. 2006년부터 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블로그의 운영은 개인적인 일기장의 의미 이상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사진에 대한 생각이 심화되어 감에 따라
내게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변모하였다.
사실 이블로그를 운영하던 초창기 4년동안은 댓글 하나 달리지 않는 1인 블로그였다.
그러던 차에 티스토리 달력 사진 공모전에 당선된 이후
몇몇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이후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게 되며
블로그가 노출되면서 요즘은 1일 방문자 수 200-300사이를 오가는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활성화된 공간이 되었다.
티스토리의 우수블로그 선정 방식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댓글도 별로 안달리고 방문자 수도 인기 블로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내 블로그가 2년 연속 우수블로그에 선정되었다는 것이 참 의아하기만 하다.
지금 이 블로그가 내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되도록이면 하루에 하나씩 포스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은 내 사진 생활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8년간 이 공간에 사진을 올리면서 내 사진이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발전은 포스팅의 역사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 내 개인적으로는 꽤나 의미있는 아카이브가 되었다.
이것만 생각한다면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을텐데
요즘은 블로그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하는 교류에 꽤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고 내 생각을 전하며
다른 사람이 내 사진을 보고 그들의 생각을 전하는 것.
블로그라는 공간을 통해 그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요원한 꿈이기도 하다.
지금 내 블로그에 들리는 사람 중 진정으로 내 사진에 공감해서 글을 다는 사람이 몇인지는 알 수 없다.
단 하나라도 내가 사진에 숨겨놓은 이야기를 이해해주는 댓글을 보고 싶지만
내가 다른 사람의 사진에 그렇지 못하듯이 다른 이들도 내 사진에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나는 절대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한다.
이곳에 글을 남기는 분도 많을 때 열명 남짓.
댓글을 보고 그분들의 공간에 들릴 때도 있고 댓글을 남기지 않더라도 정기적으로 들러
그분들의 사진을 감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왠지 공허한 느낌이 강하다.
나는 사진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제대로 그들과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사진을 제대로 읽고 피드백을 해주고 있는 것일까?
그저 품앗이 답글을 달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열 몇명의 이웃들을 대하면서도 그들의 사진과 블로그를 제대로 피드백해주지 못하는 것이 참 미안한데
몇십명과 교류하면서 사진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내게는 불가능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모순이 생긴다. 소통이라는 것이 막힌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불특정 다수와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내 사진 생활에 도움이 될터인데
그렇게 하려면 이 블로그만 관리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으니....
포트폴리오 정리라는 면에서도 이 블로그는 효율적이지 못하다.
매일 일기처럼 글을 올리다보니 작업이 제대로 유목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이 유목화될 때 나타나는 시너지 효과를 알기에 한장 한장 고립된 섬처럼 던져지는
프레임에 미안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 대해 좀 진정성있는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지금의 내 블로그는 잡동산이 공간에 불과하다.
어떤 블로그처럼 자신의 사진이론을 다른 사람에게 피력하는 것도 아니고
사진에 대한 대단한 정보를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도 아니다.
내 사진을 다른 이에게 선보이는 공간으로서도 많이 부족하고
이미 공개된 곳이기에 진정 어린 일기를 쓰기도 애매하다.
나는 이 블로그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