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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ry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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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음이 낯익음으로 변해가는데 필요한 시간 너무 낯설고 남의 집 같기만한 이 풍경이 익숙한 나의 어떤 것으로 변해가는데 걸릴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다는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낯선 느낌을 오래 간직할 수 있어야 타성에 젖지 않는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낯설은 장소, 낯설은 얼굴들, 낯설은 공기, 낯설은 시간.... 오늘 하루 종일 나를 불안하게 만든 그 모든 것들이 때때로 내가 기억해야할 금언같은 존재들임을 마음에 다시 새긴다. 어찌되었든 첫발은 떼었고,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의 가치를 굳게 믿어본다.
첫출근 새 학교로 첫출근하는 날. 별 것도 아닌데 심리적 피로감은 천왕봉 등반 직전과 맞먹는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평정심과 부동심을 유지할 수 있길.
떠나온 곳은 언제나 그립고 또 아득하기만 하다. 문득 남해제일고 첫발령 때 앉았던 자리가 궁금해져서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사진이 남아 있다. 당시 유행했던 오피스 소품 플립플랩(학교 떠나올때 제자였던 은비에게 주고 왔다)이 적막한 푸른 공간에서 홀로 빛나고 있던 내 자리 2005년에 처음 저 자리에 앉았다가 그 이후 여러 학년실을 전전했고 2009년에 교무기획을 맡으면서 다시 같은 자리로 컴백해서 제일고 근무를 마무리했었다. 항상 제일 먼저 출근해서 제일 늦게 퇴근했던 시절, 그래도 마음 맞는 동료들이 있었고 함께 카풀하던 은사님들이 계셨으며 신규라고 언제나 배려해주시던 선배교사들이 계셔 몸은 힘들어도 즐겁기만 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몇년간 근무했던 교무실, 건물이지만 떠났다가 며칠만에 돌아와도 내 공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낯설어지는 것이 학교..
그의 꿈을 응원하며 고성중앙고에서의 마지막 근무날. 모델이 되고 싶다는 제자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학교로 불러 프로필 사진을 몇컷 찍어주었다. 내 제자 중에서 가장 잘생겼던 형우야 멀리서나마 너의 성공을 기원하마. 몇번이고 좌절하고 몇번이고 울분을 참아내야하겠지만 자신을 믿고 달려가다보면 어느새 목표했던 곳에 서있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거다.
올해는 올해는 거부당하는 일보다 받아들여지는 일이 더 많기를, 수많은 O와 X의 발판들 중에서 O위에 서는 경우가 더 많기를.
비극적 결함 '비극의 주인공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되는 비극적 결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학생들이 가진 그 비극적 결함이 어설프게나마 눈에 보이기에 방향을 바꿔보려 노력하지만 주체들의 자각이 없는 이상 절대로 고쳐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나는 항상 좌절한다. 비극의 행로를 바라 보고 있는건 힘들지만 그것이 인생 전체에 있어서의 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저 고등학교 생활의 결과로 맞이할 당분간의 어려움을 보는 것에 불과하기에 깊이 개입할 수는 없다. 내가 조금 더 살아본 입장에서 아직 어린 그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듯 누군가는 나의 행로를 바라보며 내가 깨닫지 못한 비극적 결함을 안타까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심상의 폐허 속에서 나날이 깊어지며 나날이 흩어지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심상의 폐허 속에서 길을 찾고 길을 잃는 일상을 반복하는 것.
삶이 지속될수록 깊어지는 것 삶이 지속될수록 깊어지는 것 중 하나는 걱정이리라. 어떤 일이든 담담히 받아들일만큼 충분히 강하면 괜찮을 터인데 능력이 없으니 걱정만 늘어가는 것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