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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상남동 슌사이쿠보 히츠마부시, 그야말로 신록의 맛 인생에는 가끔 처음 맛보는 듯한 감탄이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그것은 마치 오랜 겨울을 지나 맞이한 첫 푸름, 봄을 지나 여름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맞닥뜨리는 신록과도 같다. 나에게 있어 히츠마부시가 그러했다. 그냥 장어덮밥이라 부르기에는 그 안에 깃든 정성과 질감, 그리고 시간이 너무나도 깊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한 그릇이다. 잘 구워진 장어가 윤기를 머금고 밥 위에 정갈히 놓여 있고, 반찬 몇 가지와 함께 나오는 소박한 상차림. 그러나 첫 숟가락을 들어올리는 순간, 나는 그 겸손한 겉모습 속에 숨겨진 격조를 깨닫게 된다. 부드럽게 구워진 장어의 결이 입 안에서 부서질 때, 그 향은 들풀 사이로 불어오는 여름 바람처럼 은근하고도 깊다. 첫 번째, 장어와 밥을 그대로 먹는다. 두 번째, 고명과 함께 .. 2025. 4. 24.
뉴잉 쥬시홀릭 창원 롯데백화점의 지하 식료품 코너에서 맥주 기획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냉장고 안에 진열된 아름다운 라벨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 한켠이 출렁이는데 그 찰나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몇 병의 맥주를 조심스레 품에 안고 돌아왔다. 그중에서도 ‘주시홀릭’이라는 이름의 병 하나가 유난히 마음을 끌었다.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IPA. 참 오랜만이다. 뭔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첫 모금부터 나는 이미 그 맛에 빠져들고 말았다. 잔에 따르는 순간부터 황금빛 탁함 속에서 과일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복숭아, 감귤, 망고가 뒤섞인 듯한 향의 향연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아직 맛보기도 전에 이미 혀는 침을 머금었다. 한 모금 머금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아, 이거지. 바로 이거야.. 2025. 4. 23.
리코 GR3X 카메라 꾸미기 완성 리코GR3X 중고를 (놀라울 정도로 비싼 값에) 구매했으나 전 주인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듯 그대로 사용하기는 좀 그랬다. 반품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과정이 너무 귀찮았다. 이렇게 내 손에 들어온 것도 인연이니 예쁘게 꾸며주겠다고 결심(자기 합리화)하고 알리익스프레스의 힘을 빌려 딱 내 스타일로 포장했다. 노르딕패턴 스킨을 씌워 자잘한 사용감을 감췄고, 스크래치가 많이 나있던 기본 렌즈링을 정품 그레이 컬러링으로 교체했다. 검은색 금속핫슈커버를 끼웠고 링케라는 브랜드의 핸드스트랩을 매 줬더니 없던 애정도 솟아날 만큼 시크한 어반 스타일 똑딱이 카메라로 거듭났다(어반에디션 저리 가!). 판매자가 끼워졌던 금속제 렌즈캡은 무겁고 스크래치도 많은 데다 실수로 떨어뜨렸을 때 소리가 요란해서 마.. 2025. 4. 22.
Just snap - 리코 GR3X GR1, GR2 사용할 때는 그 특유의 색감이 너무 맘에 안들어 무조건 흑백으로만 썼는데 GR3X은 꽤 맘에 드는 컬러를 만들어준다. 게다가 적절한 화각. 확실히 나는 28mm보다 40mm인듯. 2025. 4. 21.
갤럭시 S25울트라에서 S25 기본형으로 기변 경박단소병은 주기적으로 발병한다. 성능을 제일 가치로 두고 무게와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장비를 구성했다가 어느 순간 고질적인 어깨 통증에 질려서 다 정리하고 콤팩트 구성으로 바꾼다. 그러고는 또 시간이 좀 지나면 그래도 성능과 화질 아니나며 또 다 정리하고 거대한 바디와 렌즈들로 제습함을 채워나간다. 이 짓을 몇번째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핸드폰도 마찬가지다. 크기에 상관없이 넓은 화면과 성능을 추구하다 폴드까지 가놓고는 얼마전에 바꾼 S25울트라도 무겁고 크다고 와이프한테 줘버리고 S25 기본형으로 다운그레이드했다. 한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 놀랄만큼 가벼워서 만족스럽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러다 또 노안을 핑계대며거대한 폰으로 회귀하고 말 것임을. 그나저나 학교가면 애들이 이젠 폰으로도 .. 2025. 4. 20.
오늘의 길냥이 - 맹수 아람이 사냥 성공! 퇴근길, 아람이를 만났다. 고양이. 우리 아파트의 묘한 존재.그날 따라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웅크려 있었다.그리고 갑자기 번개처럼 달려갔다. 쥐 한 마리, 아람이는 그걸 물고 조용히 걸어 나왔다.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칭찬을 바라지 않았다.아파트 주민 여러분!경비 아저씨들!이 조용한 포식자를 사랑해주세요.우리 곁의 작은 야성,우리를 위해 움직이는 이 고요한 생명을. 2025. 4. 19.
과테말라 엘 소코로 게이샤 게이샤 커피가 유명해진 계기는 조금 황당한 일화에서 시작된다. 한 커피 심사위원이 이 커피를 마시고는, “컵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이후 다양한 나라와 농장에서 앞다투어 ‘게이샤’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제는 한국의 외곽 지역 카페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물론, 가격이 저렴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넘사벽’까지는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게이샤라고 다 같은 게이샤가 아니라는 것. 생산지, 재배 농장, 가공 방식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게이샤’라는 이름 아래 공통된 품종 특유의 향미가 어렴풋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건 마셔보면, ‘이.. 2025. 4. 18.
하루를 다시 시작하며 나는 일개 교사에 불과하다는 자각 속에서 살고 싶다.타인을 판단하기보다내 안을 오래 바라보고 싶다.어쩌면누군가의 세계에서 나는분명한 악일 수도 있다는 생각.그 생각을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두고 싶다.자기 확신이라는 단단한 벽이내 눈을 가리지 않기를.대단한 일이라는 말에서조용히 물러나해야 할 일을 그저 해야 할 만큼만 하기를.너무 가까이 가지 않기를.또 너무 멀어지지도 않기를.적당한 거리에서적당히 배려하며관계에 스스로를 내맡기지 않기를.남의 몫을 챙기면서도나의 몫도 오늘 하루 살아갈 만큼은 잊지 않기를. 2025. 4. 17.
코인러버의 통영로그 - 니지텐, 포텐, 코카모메에 이은 통영의 네번째 텐동집 저스트텐동 통영에 네 번째 텐동집이 문을 열었다. 봉수골의 니지텐이 첫 번째, 무전동의 포텐이 두 번째였다. 다만 텐동123이 포텐 사장님의 전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 곳은 같은 맥락으로 묶어도 좋겠다. 세 번째는 데메길의 코카모메. 그리고 이번에 터미널 근처에 문을 연 프랜차이즈 저스트텐동이 네 번째다. 포텐은 지금 문을 닫았으니, 현재 통영에 남은 텐동집은 니지텐과 코카모메, 그리고 이제 막 오픈한 저스트텐동까지 셋이다. 흥미로운 건, 현존하는 세 가게 중 두 곳이 봉평동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에게는 낯선 골목일지 몰라도, 현지인들에게는 사실 그리 편한 위치가 아니다. 그에 비하면 저스트텐동의 입지는 나쁘지 않다. 통영 시외버스터미널 근처. 접근성이 좋다고는 못하지만 세 가게 중 가장 유동 인구가 .. 2025. 4. 16.
콘크리트 카파도키아 기침 소리가 방 안을 맴돌았다.몸속 어딘가, 오래된 통증이 천천히 일어났다.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났다.생각도, 마음도, 하루의 온도도.나는,낡은 열기구 하나를 타고 떠오르는 중이었다.눈앞에는 회색의 벽.그 벽이 끝없이 이어졌다.하늘은 없었다.가끔 생각한다.푸른 하늘이 정말 있었던 적이 있었는지.아니면그저 바랐던 색이었는지. 2025. 4. 15.
봉수골 벚꽃 환송 꽃비와 함께 벚꽃시즌 엔딩. 갑자기 흩날리던 벚꽃에 설렘이 입안에 번져 경양식 함박스테이크를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의 만찬이 차려진 야외 테이블 옆에서 뒹굴거리던 고양이를 바라보며 이것이 봄날의 행복인가 하는 만족감을 만끽하고 있을때. 갑자기 터진 젊은 아줌마 무리의 하이톤 목소리가 하늘에 떠있던 나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한번 더 들러봐도 되겠다는 하는 생각을 하며 돌아가던 길에 만난 우리의 사랑이 필요했던 버스킹. 하필 노래가 탄핵당한 대통령을 생각나게 해서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보헤미안 느낌 물씬 났던 버스커 아저씨의 땡큐!가 인상적이었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했던 점심 시간의 짧은 나들이. 2025. 4. 12.
냉기와 온기 사이 몇 해 전,비를 온몸에 맞으며 교문 앞에 서 있었다.신발 속까지 젖은 채학년실로 돌아갔다.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그 누구도,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나는 그때,무엇을 잘못한 걸까.무엇이 그들의 마음을나로부터 멀어지게 했을까.며칠 전이었다.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던 아침.다시 그 자리에 섰다.교문 앞.학년실로 돌아오자누군가가 조용히 말했다."수고하셨어요."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도.그 말들이 차례로 내게 닿았다.나는 지금,무엇을 잘하고 있는 걸까.무엇이 그들의 마음을이쪽으로 움직이게 한 걸까.나는 알 수 없다.냉기와 온기가 엇갈리는 곳.내가 선택할 수 없는 방향으로삶은 흐른다. 2025. 4. 11.
벚꽃의 계절에게 이젠 지겨울만도 하건만 매년 그렇게 반갑기만 한 벚꽃의 계절에게, 그 더할나위 없는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낸다.       봄날, 벚꽃, 텐동, 생맥 완벽한 하모니. 2025. 4. 9.
후지 인스탁스와이드에보(Instax wide evo) 외국에선 1월에 이미 발매됐던 인스탁스와이드에보. 여러 매체에서 소식을 접하고는 오매불망 한국 정발만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4월에서야 윤석열 탄핵과 함께 그랜드 발매! 몇년간 잘썼던 라이카 소포트를 팔아 마련한 자금으로 예판 제품을 바로 질렀다. 솔직히 카메라 성능이야 크게 기대할 바 없고. 그냥 카메라 기능이 살짝 첨가된 인스탁스 와이드 포맷의 프린트 하나 장만한다 생각이었다. 이 제품의 구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것은 디자인. 투박한 사각형의 디자인에 색깔마저 딱 내 취향이었다. 실제품을 받아보니 사진으로 봤던 만큼의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금속처럼 보이는 것들이 모두 플라스틱. 외장에 금속 소재는 없다.) 그래도 이정도면 만족. 포장 패키지는 저렴함의 끝을 달리지만 중요한건 내용물.. 2025. 4. 9.
육아 진진이의 나날들 - 떨어지는 벚꽃처럼 흘러간 세월 떨어지는 벚꽃처럼 덧없이 흘러간 세월.  진진이의 키는 이미 엄마를 추월했고,  내 카메라는 니콘에서 소니로, 소니에서 후지로 바꼈다. 2025. 4. 8.
Just snap 누군가는 말했다.자신의 소신이라 했다.그 말을 들을 때마다나는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생각했다.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말들이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쓰러뜨렸는지.책임.그 단어는 쉽게 발음되지만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누군가는 잘못을 말했고,누군가는 사과를 했다.그 뒤에 남은 것은고요하고 찬 삶들.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되살릴 수 없는 얼굴들.그들은 모른다.감투 하나가 얼마나 많은 어깨를 짓누르는지.그 감투 아래,얼마나 많은 울음이 가려져 있었는지.말하고 싶다.소신이 아니라연민으로 정치하라고.책임이 아니라기억으로 살아가라고. 2025.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