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기 위해, 소식이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펜을 들어 일기와 편지를 쓰던 때가 있었다. 라디오에서 듣고 싶은 노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세트 플레이어의 녹음 버튼을 눌러 한곡 한곡 모아가던 때가 있었다. 남겨두고 싶은 음악이나 영화를 CD, DVD에 저장하고 네임펜으로 타이틀을 기록하던 때가 있었다. 조악한 음질의, 화질의 그 음악과 영상들이 너무 소중해 몇 번이고 반복해 돌려보곤 했었다. 소중한 데이터가 소실될까 봐 백업본을 몇개나 만들어 놓고서야 안심하곤 했었다. 이젠 애써 기록하거나, 저장하거나, 찾을 필요 없이 제공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대부분의 음악을, 영화를, 기록을, 콘텐츠들을 불러올 수 있다. 더 편해진 건 확실한데 더 행복해졌는지, 내 세계는 더 넓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언제든 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예전에 갖고 있던 깊고 소중한 마음을 허투루 넘기게 되어버렸는지 그렇게 좋아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대충 빨리 감기만 하다 꺼버리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요즘 애들이 쇼츠의 대유행으로 긴 콘텐츠에 집중하지 못하는 팝콘헤드가 되어 간다고 하는데 그들만 뭐라 할 처지가 아니다. 넘쳐나는 콘텐츠 속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사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책 한 권 사면 몇 번이나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문구는 옮겨 적던, 만화책을 보다 멋진 연출은 베껴서 그려보곤 했던 군대 시절이 지적으로는 가장 발전했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이 너무 부족해 작은 것 하나도 너무 소중했던, 단물이 빠진 껌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씹듯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고 했던 그때의 책 한 권이 콘텐츠가 넘쳐나는 지금의 디지털아카이브보다 더 큰 도움이 됐다고 느끼는 건 풍요의 시절을 살아가며 복에 겨워 내뱉는 투정일까? 결핍이 절실함을 만든다는 말은 학생들보다 내가 더 곱씹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