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by day2709 불가역성 어떤 일이든 한번 벌어지고 나면 이전의 상태로,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 그대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심하며 살아가야 한다.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 나서도 남아 있는 상흔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관없는 말이겠으나 패인 홈에 빠진 마음을 건져낼 수 있는 무덤덤함이 없는 이라면 문득문득 가시처럼 찌르는 기억으로 인해 평생을 괴로워하게 될테니.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싫어 기간이다. 이런저런 일로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을 많이 만나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너무 많이 들었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너무 많이 했다. 고립과 단절이 필요한 때다. 좋아하는 잔에 좋아하는 커피를 한잔 내려놓고 마음을 추스른다. 2025. 6. 3. 퇴근후 에비스 오전 내내 수업, 점심시간 경상국립대 입시설명회, 5, 6 교시 교육과정박람회,7교시 전문대연합입시설명회.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일하고 돌아와 에비스 한잔. 2025. 5. 29. 못난 카메라 한대, YASHICA MAT EM 이제 칠십쯤은 됐을 거다. 야시카 맷 EM.내가 막 선생 노릇을 시작했을 무렵, 중형 필름이 궁금해 손에 넣었던 카메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롤라이코드를 구하면서 이 녀석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렸다. 그렇게 장식장 한켠에서 십여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우리 집 거실의 한 구석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인기 많던 장비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팔아봤자 큰돈도 안 되는 것들만 내 곁에 남았다. 어쩌면 못난 나무가 고향을 지킨다는 말은 카메라에게도 해당되는 말일지 모른다. 그런데 요즘 다시 꺼내 써보니 뜻밖이다. 예전엔 시큰둥했던 녀석이 제법 괜찮은 사진을 뽑아낸다. 아니, 그때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뿐. 젊을 땐 강한 것, 빠른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만 눈에 .. 2025. 5. 27. 부다면옥, 블루보틀 부산 민락 와이프님하의 지령이 떨어졌다.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에 선정된 평양냉면집, 부다면옥에 가고 싶단다. 날씨는 궂고 바람도 불어대는 날이었지만, 사랑은 늘 기상 악화에 강하니까. 나이를 먹어 그렁그렁거리는 차를 몰고 평냉의 세계로 달려갔다. 내 인생 첫 평양냉면은, 절친 서티라노가 데려가준 을밀대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평냉의 심심함이 아니라 '심심을 가장한 밍밍함'만 느꼈고, “도대체 왜 이런 데를 데리고 왔냐”며 “촌사람이라고 무시하냐”고 핀잔을 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로 나는 평양냉면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방송에서 유명인들이 간증하듯 찬양해도 ‘저것들 또 시작이네’ 하는 마음으로 그 세계를 차갑게 외면했다. 솔직히 말하면,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이 괜히 잰 척하며 먹는 음식처럼 느껴졌고,.. 2025. 5. 26. 통영 최고의 카페 통영고등학교 본관 4층 홈베이스 쉬는 시간에 바쁜 업무가 없으면 나는 가끔 본관 4층 홈베이스에 앉아 책을 읽거나 성경을 필사하곤 한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제법 그럴듯하다. 통영의 어지간한 카페보다 뷰가 좋다. 햇살은 부드럽게 쏟아지고, 왁자지껄한 애들의 잡담 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온다. 조용하고 아늑하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시간과 공간이 이곳에 있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칠판에 남은 분필가루, 어디선가 새어 들어오던 냉기와 습기. 그때에 비하면 지금 학교는 마치 미래도시 같다. 아이들이 앉는 의자 하나, 교실의 조도 하나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말 그대로 물리적 환경은 천지개벽 수준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공간은 분명 더 좋아졌는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2025. 5. 24. 생참치덮밥, 쇼쿠사이, 피스마이너스원 하이볼 얼마 전 통영 여객선 터미널 앞에 있는 문참치에서 생참치덮밥을 포장해왔다. 맛은 괜찮았고 양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시랑하는 연분홍색 뱃살은 한 점도 없었던게 못내 아쉬웠다. 참치는 결국 뱃살이지. 그 부드럽고 고소한 기름맛을 기대하지 않고서야, 누가 참치를 찾겠는가. 예전에는 덮밥 가운데 작게 한점 정도는 서비스로 올려주시곤 했는데 지속되는 불황이 사장님의 여유를 앗아가버렸나보다. 통영은 해산물의 천국이라 불린다. 굳이 그런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시장엔 늘 생선이 넘쳐나고, 포구에선 갈매기가 선창을 날아다닌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의외로 참치 한 점을 그럴싸한 비주얼로 낼 줄 아는 집을 찾기란 어렵다. 내가 못 찾는 걸까, 아니면 정말 없는 걸까. 참치는 통영 근해에서 나는게 아니니까 그냥 내 .. 2025. 5. 23. 모든 삶은 해무 속의 항해다 모든 삶은 해무 속의 항해다.앞이 보이지 않는 물길을, 우리는 늘 더듬듯 나아간다.때로는 나침반이 있어도 방향을 확신할 수 없고,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암초는 예고 없이 우리를 좌초시킨다.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 말하는 이도,결국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무지한 존재다.보이지 않는 위험에 부딪히고, 생각지 못한 바람에 흔들린다.그래서 삶은 겸손을 배워야만 비로소 항해를 계속할 수 있는 바다다. 2025. 5. 21. 간바레 오또상 홈술세트 도쿠리 잔 우리 아파트 앞 CU 편의점 사장님은 술에 진심이다. 근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생전 처음 보는 술병들이 카운터 옆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무슨 전시회라도 여는 줄 알 정도다. 때때로 그 진심 덕분에 의외의 득템을 하기도 한다. 다만, 갈 때마다 같은 곳에 같은 모습으로 서있는 패키지들을 볼 때면, 아무 상관없는 나조차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사장님, 재고 관리 이대로 괜찮으신가요…어쨌든, 집에 들어가는 길. 맥주나 한 캔 사갈까 싶어 무심히 들어갔다가, 뜻밖의 녀석을 마주쳤다. 간바레 오또상 홈술 도쿠리 세트. 발매 소식도 모르고 있었는데, 괜히 운명처럼 느껴져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이름답게 이 사케는 불황기에 등장한 저렴한 술이다. 일본에서는 그다지 존재감 없.. 2025. 5. 14. 그냥 통영 별 생각없이 찍은 통영. 내가 사는 곳이니까. 세상은 참 신기하지. 내가 여기 흘러들어와 살게될 줄 누가 알았겠어. 2025. 5. 13. 주말 - 산청 한빈갈비 특수부위, 창원 롯데백화점 보난자커피, 첫사랑 IPA, GFX100RF 예약 주문 주말, 처외조부 기일을 맞이해 산청호국원 성묘. 그리고 한빈갈비. 창원에 갔다가 보난자 커피가 생겼길래 필터커피 한잔. 딱 기대했던 만큼의 클린컵. 통영에서 구경하기 힘든 내 최애 헤이지 IPA 첫사랑. 다른 동네에는 편의점에 널리고 널린 이 맥주를 애써 쟁여와야하는 현실이 참 ㅠ_ㅠ 촌동네 살기 힘들다. 재작년까지는 우리 동네에서도 첫사랑, 홉스플래쉬, 흑백 같은 맥주를 파는 편의점이 있었는데 잘 안나갔는지 이젠 찾아볼 수 없다. 안팔리는 제품 발주해달라고 부탁하기도 그렇고. GFX100RF 실물 영접.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고 만듦새도 괜찮다. 손에 감기는 느낌이 좋다. 예약은 했는데 언제 받을지는 모르겠다. 잊고 있을 때 쯤 도착하겠지. 하루 빨리 이거 들고 산책 가고 싶다. 2025. 5. 12. 20250505-20250506 서울, 제로퍼제로, 안암, 오뉴하우스, 서머셋팰리스, 비어있는 삶 텅, 배수사, 진중우육면관, 국립현대미술관 론뮤익, 더현대 수티, 블루보틀, 포인트오브뷰 힘들어서 글 쓸 여력이 없음. 지난 월-화 이틀간의 서울 방랑은 글 없이 사진으로 갈음함. 2025. 5. 11. My wife - 더현대 블루보틀 우리는 촌에 사는 사람들이라 블루보틀에서도 기념 사진을 찍어야 한다. 2025. 5. 9. 살다보니 샤넬을 다 써보는구나 BLEU DE CHANEL 와이프님하께서 좋아하시는 티모시 샬라메가 광고 모델이라는 이유 하나로 블루 드 샤넬을 선물로 사주셨다. 이걸 뿌린다고 내가 헨리5세나 폴 아트레이데스가 되는 건 아니지만. 사실 나는 존바바토스 아티산처럼 약간은 아저씨스러운 익숙하고 편한 향이 좋다. 출근할 때 툭툭 뿌리면 이만하면 오케이지 싶은 그 무심한 향기. 모텔이나 목욕탕에 있는 쾌남 화장품, 혹은 올드 스파이스를 살짝 세련되게 다듬은 듯 티나게 꾸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그러나 비싼 향수를 선물로 주겠다는 걸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뿌려보니 확실히 향이 다르긴 하다. 더 고급스럽고, 더 오래 간다. 한 번 뿌렸는데 오후까지 잔향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역시 돈은 향기마저 길게 잡아두는 힘이 있구나 싶다. 2025. 5. 8. 무상의 풍경 속에서 번뇌하며 모든 것이 저물어가던 무렵 바람 냄새가 나서 집앞 바다를 거닐었다. 감정을 품지 않은 풍경 속에 서서 108개도 넘는 번뇌를 감당해야 하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돌아오던 길, 아파트 1층의 고양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2025. 5. 4. 나의 진주 - 항상 오랜만 오랜만에 진주.익숙한 듯 낯선 거리, 여전히 그대로인 공기.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서로의 안부를 묻기보다, 그 사이 흐른 시간을 조심스레 만져본다.오랜만에 들린 가게들.익숙한 향기. 변치 않은 메뉴와 자리. 그곳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그곳을 기억하고 있었다.오랜만에 먹은 음식들.입에 익숙한데, 혀끝이 낯설다. 기억 속 맛과 지금의 맛 사이, 시간은 묵묵히 간을 맞춘다.언제부턴가 모든 것의 앞에 붙는 오랜만.그건 어쩌면, 내가 놓쳐버린 삶의 거리.혹은 마음이 놓아버린 익숙함의 흔적.그 모든 오랜만들이 모여 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2025. 5. 3. 바로 지금! 자율학습 감독 중,숙면을 취하고 있던 학생의 등짝에서 마주친 문구 하나."바로 지금이야!"매일 눈을 희번덕이며 찾아다니는,어찌보면 뻔하디 뻔한 역설적 순간.처음엔 웃음이 났다.하지만 곱씹을수록,뭔가 마음을 두드린다.그들의 인생에도,우리의 민주주의에도.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순간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진인사대천명!결정적 순간은 늘, 지금이다. 2025. 5. 2. 이전 1 2 3 4 ··· 1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