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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털 카메라의 보급 확대와 함께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몇 년 간의 DSLR 유저 증가율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잡아든 카메라, 하지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좋은 사진을 접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사진을 좀 더 잘 찍고 싶다는 자그만한 욕심에 빠져들게 된다. 처음에는 카메라나 렌즈를 바꾸면 사진이 확실히 달라질 것 같다는 욕심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보지만 큰 소득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장비병 다음 단계로 소위 말하는 내공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이것은 이시대의 DSRL 유저들이 가지는 공통된 의문이고 희망사항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에 부응하여 요즘 DSLR 관련 책자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그 책들 중에는 정말 괜찮은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들이 웹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고 그나마 예제 사진이라고 실려 있는 것들도 후보정이 가미된 것들이라 촬영과정을 제대로 바라보기는 힘들게 되어 있다. (후보정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 기법을 설명하는데 실리는 사진은 무보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보정을 했다면 후보정 여부와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의 카메라 인생도 어느새 9년에 접어들고 있지만 그동안 해온 것이라고는 장비수를 늘려오는 것 뿐, 내공은 저 바닥에서 기고 있는 바 어찌하면 실력을 늘릴 것인가로 많은 고민을 했고 또 사진기법서와 사진집도 많이 사봤다. 이러한 책들이 도움이 전혀 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진은 직접 찍지 않으면 늘지 않는 것이고 또 찍기만 하고 반성을 하지 않는 다면 무의미하게 같은 종류의 사진을 양산할 뿐이다.

 인터넷에서 곽윤섭의 사진마을이라는 사진클리닉을 운영하고 계신 한겨레일보 기자 곽윤섭님께서 책을 낸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다. DSLR유저들의 모자라는 사진들을 콕콕 짚어주시면서 속시원한 조언으로 방문자들의 내공 증진에 큰 도움을 주고 계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곽윤섭님의 책에는 그동안 윤섭님이 찍어온 사진들 중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들이 실리겠구나, 얼마나 심오한 사진 기법들이 실릴까? 아마 보는 것만으로도 내공이 팍팍 늘어나겠지? 심지어 제목도 내사진에 힘을 주는 101한가지잖아? 라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 렛츠리뷰에 신청 글을 쓰면서도 이 책만큼 선발되기를 바래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리뷰에 당첨되고 나서 배송되어온 이 책은 내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리고 있었다.

 

 사진이 전혀 없는 사진서적이라니.... 이 무슨 어이없는 구성인가? 게다가 이 책에는 그동안 봐왔던 일반적인 사진 기법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거의 없다. A부터 Z까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친절한 책이 아니다. 여러 가지 주제들을 뷔페처럼 늘어놓고 먹고 싶은 걸 먹어라고 하는 개방된 책이었던 것이다. 내용도 워낙 간결해 마음먹고 다 읽으려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받자마자 책을 한달음에 다 읽어버리고는 엄청난 공허감에 휩쌓였다. 윤섭님 너무하세요. 제가 기대했던 멋진 사진은요? 화려한 사진 기법은요? 그렇게 하루만에 책을 던져 놓고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 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2주가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도 나는 많은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카메라 가방에 많은 렌즈들을 바리 바리 챙겨들고...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진을 찍어도 맘에드는 것은 한 두장에 불과 했다. 이거 너무 한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다 다시 리뷰를 위해 책을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1년에 한 장만 건질 수 있다면 나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다”


매그넘의 창립자였던 브레송이 한 이야기다. 곽윤섭님은 그에 덧붙여 1년에 한 장은 어림도 없다라고 했다. 나는 겨우 2주동안 맘에 드는 사진이 별로 없어서 고민에 빠졌는데 윤섭님은 1년에 한 장도 어림 없다라니.... 대가들 또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이 잘못된 이유에 대해 날씨가 흐려서라는 변명을 붙이고 있었는데


 “흐린 날을 사랑하라”, “ 비 온 뒤엔 색이 생생하다.”


라는 내용이 다음 페이지에 있는 것이 아닌가? 예쁘게 보이는 것만 찍고 잘 찍힐 때만 찍는다면 그것이 어찌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글을 보며 잠시간 자기 반성에 빠졌다. 그리고 이 시대의 모든 장비병 환자에게 경종을 울릴 결정적인 한 페이지....


 “ 표준렌즈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소유한 렌즈만 해도 거의 12종, 줌렌즈부터 단렌즈까지 다양한 화각의 렌즈를 구비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겉멋만 들어가지고 렌즈를 모아온 것은 아닌지.... 내가 카메라를 좋아하는지 사진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 순간이었다. 글의 앞부분에서 말했듯 사진을 찍기만 하고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실력은 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허술하다고 생각했던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은 내가 반성하기 시작한 순간부터였다. 이 책은 사진 찍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여유를 가졌다. 초보자부터 내공을 갖춘 고수까지 자신의 사진 생활에서 반추할 만한 내용이 101한가지 중에 반드시 하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예쁜 팬시 제품처럼 꾸며진 이 책이 그 날 이후 내 카메라 가방에서 빠지지 않게 된 이유다. 출사를 나가기 전 이 책을 한번 읽고 나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져 사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을 하며 사진을 찍게 해준 고마운 책, 누군가 내게 사진 서적 한권을 권해 달라고 말한다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권하겠다. 물론 책만 읽고 사진을 찍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찍자. 그러다보면 어느새 늘어있는 내공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 이 시대의 모든 DSLRER들이여 파이팅~! 다같이 멋진 사진을 찍어내는 그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