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휴가 시작됐지만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희대의 개새끼들 탓에 울분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였고, 그 감정을 오래 붙잡고 있는 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싶어 장식장에 쳐박혀 있던 카메라를 꺼내 틈마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고 닦아냈다. 사진을 좀 찍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손에 쥐어봤을 RB67. 다른 필름카메라들이 중고가가 치솟으며 몸값을 올리고 있지만, 이 녀석만은 여전히 묵묵하다. 가격은 바닥을 기고, 존재감은 없다시피. 그래서인지 더 애정이 간다. 겉멋 들지 않고 자기 일을 해내는 그런 사람을 보는 느낌이랄까. 대학생 때였다. 동네 사진관에서 중고로 내놓은 걸 우연히 발견해 냉큼 들고 왔다. 한동안은 잘 쓰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서랍 깊숙이 넣어둔 채 잊고 지냈다. 그게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오늘 먼지를 털고 다시 꺼내본 RB67은 여전히 듬직했다. 거대하면서도 간결한 몸집에 믿음직한 기계식 셔터음. 요란하지 않게 자리를 지키던 이 녀석이, 지금 내 기분을 조금씩 가라앉혀준다. 내 감성엔 핫셀보다 이게 더 맞다. 비싸지도 않고, 유행을 선도하지도 못하지만 묘하게 마음을 끄는 존재. 그런 것들이 삶엔 꼭 하나쯤 필요하다.
듬직한 이 녀석으로 희대의 악당들 뚝배기를 깨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