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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by day/Weekend

주말 - 어묵국수, 감탄주, 셰프장, 생마차, 주말 자율학습 감독, 냉삼, CCD커피

by coinlover 2025. 4. 28.

 

 

 


두꺼비 오뎅에 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와이프가 정성껏 끓여준 어묵국수 한 그릇. 국수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 보니 괜히 밖으로 나가려 했나 싶다. 마침 한 커뮤니티에서 맛있다고 추천받은 국산술, 감탄주도 꺼내들었다. 맑은 술과 어묵 조합은 웬만하면 실패하지 않기에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한 모금 삼키자마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감탄주는 지나치게 달콤해서 어묵국수의 깊고 담백한 맛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감귤의 향도 어딘지 부자연스러웠고, 결국 감탄이 아니라 한탄을 삼키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통영에서 제일 맛있는 후토마끼를 먹겠다고 결심한 지 일주일. 드디어 마음도 발걸음도 가볍게 셰프장을 향해 걷던 길, 통영 유흥의 탑을 만났다. 번쩍이는 전광판 아래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판이 킬포인트였다. 웃어야 할지, 놀라야 할지, 잠시 발걸음이 머뭇거렸다.

 

 

구름 한 점 없이 매끈한 하늘, 그 가장자리에서 빛이 찌르듯 쏟아지다 이윽고 힘을 잃었다. 노란 중앙선은 빛을 머금고, 마치 삶을 가르는 얇고 긴 칼날처럼 도로 위를 가로질렀다.

 

 

불금, 셰프장의 첫 손님이 되었다. 모둠초밥, 후토마끼 반 줄, 그리고 아사히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눈치 보지 않고 4인석에 느긋하게 앉았다. 황금빛 거품을 머금은 맥주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달았다. 하지만 딱 한 잔만. 비쌌다. 재료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다 보니, 셰프장의 모둠초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초라해진 듯했다. 어쩌겠는가, 모든 게 서서히 쇠락하는 시대에.
그저, 입 안 가득 차오르는 후토마끼의 변함없는 퀄리티가 작은 위안일 뿐.

 

 

약간 모자란 취기를 채우려 근처 생마차로 발길을 돌렸다. 300ml 생맥주 한 잔, 1900원. 조금 싱거웠지만, 불황의 맛이라 생각하며 감사히 들이켰다. 굳이 4900원짜리 삿포로 맥주를 고를 이유는 없었는데, 괜히 그랬다.

 

 

토요일, 주말 자율학습 감독을 나서는 길. 충무교 위에 멈춰 사진을 몇 장 찍고 있었다. 그때 하현태 부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어디야?"
"충무교 위입니다."
부장님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아무리 봐도 내가 맞는 것 같아 전화를 걸어봤다고 했다. 15년 전, 진주에서 3학년 부장으로 모셨던 분을 이 낯선 다리 위에서 다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쯤 되면, 인연이란 말도 무겁지 않다.

자율학습에 나온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별다른 관리도 필요 없어 복도에 앉아 오닉스팔마로 책만 읽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백 명 단위 학생들을 통제하던 때가 있었다. 생각하면 허망하다. 노력이라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도 결국 모두 상대적인 것일 테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요즘 학생들은 예전만큼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요일 저녁, 죽림에 새로 생긴 냉삼집에서 고기를 구웠다. 어릴 적 칠암동 집 마루에 앉아 어머니가 구워주던 소금구이 맛이 떠올랐다. 1987년,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몇 달 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그저 행복했던 저녁 식사. 그때의 기억이 어쩌면 지금보다 더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고기 속 오돌뼈처럼, 씹을수록 도드라지는 기억에 잠시 멈칫했다.
기억은 삶의 곳곳에 숨어 있다가, 슬픔도, 기쁨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도 불현듯 켜놓고는 한다.

 

 

죽림에 CCD 커피가 들어섰다. 부산에서 처음 봤을 때, "CCD 센서 달린 카메라들은 색감이 참 좋았지"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났다.
설마 통영에도 생길 줄이야. 마침 코닥 어패럴 옷을 입고 있던 아내에게 컵을 들어달라고 했다. 이 한 컷을 찍으며, 한때 코닥 CCD를 품었던 카메라들을 떠올렸다. 잊은 줄 알았던 그 시절의 색감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