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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landscape

실륵사에서

coinlover 2015. 2. 1. 21:22

 

실륵사 삼층 석탑앞에서 바라본 남한강

 

 

 

 

 

 

1999년에 역사교육과 2학년이 되었고 선후배들과 함께 처음 갔던 답사지가 서울지역이었다.

 

첫날 힘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전체 모임을 갖던 와중 일이 터졌었다.

 

신입생 한명이 예비역 선배들의 강압적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여기가 군댑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고

 

선배들은

 

'어 군대다'

 

라는 대답으로 맞서며 후배를 훈계하려 했던 것이다.

 

당시 우리과는 군대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격했으며,

 

후배들의 용의복장부터 생활까지

 

튀는 것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 후배는 당시 남자들은 별로 하지 않던 귀걸이까지 하고

 

입학을 했던터라 안그래도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파격적인 대답을 하여

 

선배들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어 있던 터였다.

 

어쨌든 그 후배는 답사 첫날 저녁 뒷풀이에서

 

술은 좀 과하게 마셨고 자신에게 끝없는 훈계를 늘어놓던 선배 한명과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내지른 주먹에 숙소의 유리창이 깨졌고

 

그의 손도 엉망이 되었다.

 

직속 후배의 부상에 당황한 나는 옷에 피가 묻는 줄도 모르고

 

그의 손을 잡고 수건을 감고 있었는데

 

그 순간 방에 들어온 여자 후배들은

 

피범벅이 된 나를 보고 내가 후배를 다치게 한 것으로 오해를 했고

 

나는 졸지에 폭력 선배로 낙인 찍혀 답사기간 내내

 

묘한 눈총을 받으며 지냈어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우습기만한 그 사건이 터진 곳이 바로 실륵사 인근의 숙소였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채로

 

일어난 새벽 실륵사 삼층 석탑 앞에서 후배들과 찍은 어색한 기념 사진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15년 만에 실륵사에 들러 그 모전 석탑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모를 헛헛함이 가슴에 맴돌았다.

 

마침 그때 진진이가 바지에 쉬를 한 바람에

 

감상에 빠질 틈도 없이 돌아 나와야 했지만....

 

이러나 저러나 실륵사와 나는 상성이 맞지 않나 보다.

 

겨울이면 상고대가 펴서 천상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실륵사.

 

다음에 왔을 때는 그 진면목을 만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