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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by day

절실함과 진정성에 대하여

coinlover 2017. 1. 6. 06:40

 

 

 

아이들에게 절실함과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192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이유는

 

독서회를 통한 학생들의 조직화에서 기인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그들의 의식 수준이었다.

 

당시의 학생들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낼 역량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모든 조건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그 시절의 학생들이

 

지금의 고등학생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을

 

마르크스의 책을 읽고 토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진정성과 절실함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책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지식에 목말랐던 그들은 단 한권의 책이라도 읽고 또 읽고 읽었으며

 

그것이 완전한 자기 것이 될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절실함과 지적 탐구에 대한 진정성,

 

이는 지금의 학생들이 갖지 못한 그들만의 자산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한계를 많이 느낀다.

 

그들에게 지식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대학을 가기 위한, 직업을 택하기 위한

 

학습의 편법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활성화된 이후 더 심해졌다.

 

생활기록부에 적어넣기 위해 만든 토론 대회에서

 

학생들이 하고 있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는 능력이 생겨났을지는 모르나

 

그 내용에 건질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자료를 조사하는 능력은 생겼지만

 

그 자료를 통해 지식을 체화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설명해내는 능력은 생겨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순도 높은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진정성과 절실함.

 

그것이 결여된 학습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

 

요즘의 교육제도와 학생들의 태도에서 그것을 절절하게 느낀다.

 

 

나는 아직도 전통적 학습법의 효과를 믿는 편이다.

 

요즘의 학교는 계속해서 학생들에게

 

탐구심과 창의력을 교육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누군가의 교육에 의해 길러지는게 아니다.

 

호기심에 의한 지적 탐구를 계속해나가다보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에서 순도 높은 기본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학생들에게 편법을 가르치고 있는것은 아닐까?

 

방법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방법을 통해 전달해야할 내용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한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