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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ry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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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와 중도를 참칭하는 이들에게 내가 만나고 겪었던 사람들만으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개인주의자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기주의자였고 중도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기회주의자였다. 진짜 개인주의자들은 실제로는 이타적이었고 진짜 중도들은 누구보다 정치 의식이 높고 확고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멸망을 향해 기쁜 발걸음을 내딛는 동지들에게 뜬금없이 우울한 얘기를 꺼내서 미안하지만 멸망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 그 속도가 문제인데 예상보다 훨씬 빠른 것 같다.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면 가속도를 줄여볼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정해진 파국을 막을 수는 없을테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바꿀 생각이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바껴서 막아주길 바랄 뿐이다. 뻔히 보이는 낭떠러지를 향해 기쁜 걸음을 내딛는 동지들과의 동시대를 살아가는데 대해 큰 불만은 없다. 정해진 끝에 도달하는 것은 모두 같기 때문이다. 그 끝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두려운건 사실이지만 나 혼자 가는 길이 아니기에,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두려운게 없었기에 그러려니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능력있고 운이 있는 사람들은 그 점에 도달하는게 조금 늦어질지도 모..
회자정리 세상에 끝나지 않는 연회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헤어짐이 무서워 오래전에 놓았어야 할 끈을 억지로 잡고 있었던 거다. 한 두 사람의 주도로 근근이 이어지는 모임은 그들이 마음을 놔버리는 순간 끝나는 법. 이제 나도 마음을 내려놔야겠다. 헤어졌다가 만나고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 삶이니 또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겠지요. 저도 이제 이 아쉬움을 딛고 서서 헤어짐을 받아들이겠어요.
동시대인이란 - 조르조 아감벤 동시대인이란 자신의 시대에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빛이 아니라 어둠을 지각하는 자이다. 모든 시대는 그 동시대성을 자각하는 자들에게는 어둡다. 따라서 동시대인이란 이 어둠을 볼 줄 아는자, 현재의 암흑을 펜에 적셔 글을 써내려 갈 수 있는 자이다. 조르조 아감벤
내 마음 같은 사진 흑백이 아닌데 흑백 같은 사진. 회색으로 물든 세상에서는 어떤 카메라를 들어도 흑백으로 나올 뿐이지. 내가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얘기해도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뿐.
사위다 2022년, 44살의 한해가 내 모든 열망, 수많은 미련과 함께 사위어간다. 이젠 시작보다 끝이 가까운 때. 가득차 있던 시계 속의 모래가 끝을 보일 때 더 빨리 흘러내리 듯 느껴지는 것 처럼 내 인생의 속도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마지막 한알의 모래가 떨어져 내린 후 다시 뒤집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모래시계와는 다른 것이 삶.
교직의 낭만 그러고보니 교사 생활하면서 보람이라는걸 마지막으로 느껴본게 언제였을까. 보람? 아직도 대한민국 교육계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 헌가? 닿지 않을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일 뿐이지. 미련에 빠져 포기하지 못한 채. 내가 정말 술을 끊을래야 끊을수가 없다. 맨 정신으로 버티는게 너무 힘든 나날이라. 에잇 빌어먹을 세상! 진짜!
기억의 날 첫 부장을 맡았던 날이다. 첫 학년 부장 업무가 시작됐던 날이다.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 어둠 속의 길을 달려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겨 있던 학교에 도착했다. 학년실의 문을 열고 첫날 무엇부터 해야할 지 정리하다보다 날이 밝아왔다. 창밖을 바라보니 첫 학생이 등교하고 있었다. 첫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비록 이후의 2년은 실패로 점철된 시간이었지만 저 때의 나는 분명 뒷목을 타고 오르는 순수한 고양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사진을 통해 그 기억이,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