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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ry thought/As coin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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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에 블로그라니 유튜브를 비롯한 개인 영상물의 제작과 활용이 극도로 활성화되면서 이젠 순수한 취미를 목적으로 컨텐츠를 만들고 포스팅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는건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구독자가 몇명, 조회수가 얼마나 나오는가를 따지며 그로 인한 광고 수익을 어느 정도 벌 수 있느냐가 컨텐츠들의 척도인 시대이기에. 이런 시대에 홀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꽤 오래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공간으로써의 블로그를 꿈꿨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사진과 텍스트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에 와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고로 지금의 내 블로그 포스팅들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오직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온라인 일기장 혹은 기억의 보조 수단 정도랄까...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몰라도 될 것까지 알게되어버리는 피곤한 세상에서 정작 알아야 할 것은 놓치고 사는 삶.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노력하기 전에 빛 속에 드러난 것들이라도 제대로 파악하는게 어떨지.
그렇게 특별했던 사진의 여름이 저물어 간다 2009년에 진주사진여행이라는 동호회에 가입을 했다. 지역 동호회치고는 꽤 큰 규모였고 매월 2번 정도 추진됐던 정기출사에 적게는 15명에서 많게는 40명 넘게 모일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었다(출사에 버스를 대절할 정도였으니 뭐.). 출사 나가면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뒷풀이가서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다졌다. 누가 새 카메라, 렌즈를 사면 뽐뿌를 받아 지름의 연쇄가 이어졌고 남들보다 조금 더 잘찍기 위해 노력했다. 동호회 카페에 올린 사진에 어떤 댓글이 얼마나 달리는지 보며 행복해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2011년에 결혼을 하면서 외부활동이 어려워졌고 사진에 대한 나의 관심은 더더욱 깊어져버렸기에 동호회 출사를 다니며 찍는 포인트 출사는 점점 줄어갔다. 개인적인 작업 정리와 전시, 출판 ..
소셜 딜레마 - 필멸자의 삶에 저주없는 광대함은 없다. 코로나19 상황이 심해진 이후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생존이라는 문제 앞에서 의미를 잃는다. 하지만 과도하게 강조되는 비대면 온라인화의 당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분명하다. 코로나19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을거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한다.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온라인화의 진행으로 모든 것을 독점하기 시작한 관련업자들의 헤게모니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나날이 심화되는 양극화를 코로나를 핑계로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닌가? 위기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온라인 인프라 구축과 활용은 어쩔 수 없으나 그것만이 우리가 가야할 유일한 길임을 주입식 교육처럼 강조하는 것은 어떤 목적을 ..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일상인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을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1. 목숨 바쳐가며 독립운동 했더니 광복 이후의 나라는 친일파가 장악하고, 모진 고문에 신음하며 민주화 운동했더니 그 열매는 독재 옹호 세력이 탐식하며, 대통령 수호와 개혁을 바라며 의석을 몰아줬더니 꿀은 사쿠라들이 빨고 있다. 2. 그렇게 아니라고 아니라고 말해도 아파트값 올려줄거라, 경제 살려줄거라는 말에 속아, 형광등 백만개를 켜놓은 듯한 아빠 후광에 속아, 똥인게 확실한 걸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겠다고 지지하더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게 취미생활인 우리는 외양간에 소가 있으면 그리 마음이 불안한지 항상 풀어주려고 난리를 친다. 3. 그놈이 그놈이라며 아무 관심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만한 여력이 없기에. 굳이 분류하자면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면 생존하기 힘든 약자에 속하기에..
누군가가 당신의 노력을, 결과물을 우습게 본다면 누군가가 당신이 하는 작업을, 결과물을, 노력을 우습게 본다면 그들과 연관되지 않으면 된다. 전업이 아닌 아마추어의 특권이 바로 그거다. 왜 쓸데없이 기웃거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다른 이에게서 위안을 구하는가?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자기들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명예에 관한 것이든 돈에 관한 것이든)이 훤히 보이는 것이다. 유쾌하지 않은 기분임에도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당신은 이미 그물에 걸려 있으니.... 그들이 당신을 비웃는게, 가볍게 보는게 힘들다면 그들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 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건 정말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다.
스펙트럼 2011년에 2030 청년작가로 선정되었을때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분께 스펙트럼이 넓은 사진가가 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때의 다짐을 지켜나가고 있는지 고민해봐야겠다.
다시 삶의 위기를 맞이하며 결국 다시 삶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관계가 어그러지고 삶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를 확실히 자각하며 바지런하게 하나 하나의 디테일을 챙겨나가야 한다. 다시 나를 다잡으며 어둠의 기저를 명확히 응시하려 한다. 어차피 인생은 언제나 암중모색일 수 밖에 없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