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도서관 앞을 지나가는데 시도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려 했는데 여학생 두 명이 겨울이라 부르며 시도를 반기고 있었다. 녀석은 나보다 여학생들이 좋은지 휙 돌아서 그들에게 가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여학생들이 먹을 걸 주지 않자 그제야 나를 바라보며 애옹거리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츄르를 갖고 있지 않은 날이었다. 궁디 팡팡 몇 번 해주고 나니 내가 빈털터리라는 걸 눈치챈 녀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제 갈 길을 향해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겨울이, 또 누군가에게는 시도, 공공재인 길냥이의 이중 생활을 잠시 엿본 순간이었다.
개학하고 오랜만에 만난 새침룩이. 털이 많이 쪘다. 겨울을 무사히 보내서 다행이다. 이젠 프로 길냥이다운 원숙함이 느껴지는 듯. 거적때기 밑에 숨어 자고 있다가 내가 오니 일어나서 돌아다님. 못본 사이 조금 늙었다 싶은 느낌이 들었는데.... 못 보던 냥이 두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아마도 새침룩이 새끼들인 듯. 날 보고 츄르 달라고 애옹 거리던 새침룩이와는 달리 경계심이 심해서 조금만 다가가도 도망가기 바빴던 녀석들. 지금은 이래도 자주 보면 친해지겠지.
성탄 구유 앞에 완벽한 구도를 만들며 앉아계신 (사진을 좀 아시는) 묘르신. 밑에 깔린 거적데기에 앉아 모처럼 따뜻해진 날씨를 즐기고 계셨다.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보고 예수님 태어나실 때 거대한 고양이가 수호성수처럼 앉아서 지키고 있었던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며 큭큭거렸다. 동방박사와 수호성묘ㅋ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주신 묘르신께 감사의 츄르를 바치며 내년에도 자주 뵐 수 있길 기원했다.
도천동 KT 골목의 새침룩이. 같이 살던 아슬란과 화오는 모두 고양이별로 돌아갔는데 홀로 생존해 2년째 그곳을 지키고 있다. 살아남는 고양이가 강한 고양이. 아직 털 상태도 좋고 딱히 아픈 곳도 없는듯. 어느새 프로길냥이로 성장한 새침룩이가 늠름해보인다. 늦봄 무렵에 자취를 감춘 아슬란과 화오. 아슬란은 내가 특별히 사랑하던 냥이라 사자처럼 건강하게 살라는 뜻으로 아슬란이라 불렀고 화오는 화이트 오드를 줄여서 부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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