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yeong Log

코인러버의 통영로그 - 부부의 날, 죽림 이자카야 일엽, 카페 그래 팥빙수와 수박주스

coinlover 2025. 5. 22. 08:13

 

 

요즘 내 삶은 매일 산을 오르는 것 같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즈음,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다. 그러다 문득, 페이스북을 보다 알게 된 사실. 오늘이 부부의 날이란다. 몰랐으면 그냥 지나쳤을 평범한 하루였겠지만, 알고 나니 ‘마침 딱 그날’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쯤 되면 삶도 타이밍의 예술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넘겼을 작은 기념일이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은 곧 의식이 된다. 장소는 죽림에 새로 생긴 이자카야 ‘일엽’(새로 생겼다고 했지만 사실 내 기준에서 그렇다는 말이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예전엔 ‘돼지바’라는 고깃집이 있던 자리다. 자주 갔던 곳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창가 자리에 앉아 이자카야의 국룰에 따라 생맥주 먼저 주문했다. 레몬 슬라이스를 띄워 한 모금 마시니 가뭄 속의 단비처럼 마음 속의 갈증까지 가시는 기분이었다. 배도 출출해 야끼소바를 주문했다. 간장 베이스겠거니, 별 생각 없이 시켰는데 이게 웬걸. 생각보다 매웠다. 메뉴판을 다시 보니 이름 옆에 붉은 고추가 불타고 있었다. 얼얼해져 오는 혀끝(일반인 기준에선 맛있게 매운 정도일 듯), 내가 고양이혀라는 걸 다시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곁들인 닭꼬치는 무난했다. 인상 깊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대를 저버리지도 않는 정도. 음식 솜씨가 나쁘지 않은 가게구나 싶었다. 다만 해산물이 거의 없는 메뉴 구성은 아쉬웠다. 바닷내음 나는 안주 하나쯤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매운 기운은 맥주 몇 잔으로도 씻기지 않았다. 그래서 가게 옆 카페 그래로 향했다. 빙수 하나와 수박주스를 시켰다. 이게 또 별미였다. 팥빙수는 언제나 담백한 듯 달달했고, 수박주스는 자기가 진짜 수박으로 만들어졌음을 강하게 주장하며 입안을 다시 씻어주었다. 이렇게 부부의 날은 지나갔다. 특별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하루. 그래도 한 끼를 함께하며 조금 웃고, 조금은 맵고, 조금은 시원했던 하루.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게 부부라는 관계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꼭대기에 올라서야 보이는 풍경도 있겠지만, 오르는 중간중간 마주치는 작은 쉼표가 더 소중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