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 대일 햇볕정책을 바라보며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차가운 북풍이 아니라 따스한 햇볕이었다.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보다 인도주의적 원조와 동족애에 바탕한 화해 분위기 조성으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해 평화 통일을 지향하겠다는 것이 김대중 정권의 대표적 대북 정책인 햇볕정책이었고 노무현 정권 때까지 그 기조는 이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에,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에 김정일을 만나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 한발 더 다가선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뒤이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대북 강경정책으로 돌아서면서 이전까지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권도 큰 틀에서는 햇볕정책을 계승했고 일정 부분의 성과를 이뤄 전 정권까지 전쟁을 말하던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말 안 듣는 패륜 형제처럼 수틀리면 언제나 폭주를 거듭했고 한국의 보수세력이 진보정권의 원조가 북한의 핵개발 기반이 되었다 등의 비판을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민족의 통일은 우리의 염원을 넘어서는 여러 세력의 이해관계가 강하게 얽혀 있기에 남북한의 화해만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북한에 대한 햇볕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던 이들은 일본에 대한 햇볕정책을 지속해가고 있다. 대일청구권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일본의 도발로 시작된 한일 외교 분쟁은 문재인 정권 내내 절정으로 치달았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일본과의 외교 정상화를 명분으로 내걸며 대일청구권 제3자 보상, 독도 문제의 언급 회피, 처리수(?) 방류에 대한 동조와 침묵, 그리고 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 동의 등 한없는 양보 외교로 일본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얻은 것은 무엇인가?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 때 맞은 뒤통수가 아직도 얼얼한데 사도광산 등재 과정에서 또 강제 징용에 대한 내용은 지워버리는 똑같은 패턴의 통수를 맞았다. 한번 당하면 사기꾼이 잘못한 거지만 재차 당하면 당한 사람이 멍청한 게 아닌가. 따스한 햇볕 정도만 보내야 할 것을 애정이 넘친 나머지 강력하게 내려쬐는 정오의 직사광선을 보내니 일본이 우리는 바보 취급하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호성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국제 관계에서 우리는 너네가 무슨 짓을 해도 같은 편이야 라고 말하는 건 그냥 호구 취급해 달라고 직언하는 것과 같다. 장수왕이 남북조에 대해 행한 등거리 외교, 광해군이 명과 청 사이에서 취한 중립 정도는 중고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역사의 교훈 아닌가? 미국과 일본에게는 골려먹고 부려먹기 좋은 찐따,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주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우리 외교. 그 끝에는 과연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