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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러버의 다락방

여린 잎이 한층 깊은 녹색으로 짙어져 가던 오후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던 아빠와 딸은 잡아주던 손을 놓고 혼자서 탈 수 있게 된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하겠지. 바람이 꽤 강하게 불었으나 날씨는 맑고 포근했던 이날의 기억이 저 부녀에게 실로 소중한 순간으로 남아 문득 문득 살아갈 힘이 되어주겠지.

동백의 죽음 너머에서 피어나고 있던 민들레 홀씨. 서로의 죽음과 삶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피어나고 떨어질 뿐.

학교에서 10분만 걸어나가면 이런 풍경이 보인다. 점심 시간에 충무교까지 걸어가 사진 한 컷을 찍고 오는 것이 삶의 작은 기쁨이 되고 있다. 결혼하면서 통영과 인연을 맺었지만 주민등록상의 거주지는 항상 진주였고 계속 진주, 고성으로 출퇴근하다보니 이곳에 대한 마음이 크게 자리 잡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올해 전근을 오면서 전입신고를 하고 나니 이제야 이 지역 사람이 되었다는 실감이 나고 통영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음에 들여놓지 않으면 사진을 찍어도 공허하게만 느껴지는데 이제야 통영 곳곳을 찍어낼 준비가 됐나 보다.

화사하고 깨끗한 색으로 저마다의 터전을 가꾸고 있던 분들. 절정을 맞은 통영의 봄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지난번 방문 때 너무 만족스러워서 다시 가게 됐던 무전동 김형제 고기의 철학. 근데 이 집도 고기 상태에 편차가 있는 것 같다. 지난번에 먹었던 꽃목살과 함께 2000원 더 비싼 부채살 부위를 시켰는데 쫄깃하고 육즙이 팡팡 터지던 그 느낌이 거의 없었다. 고기 굽는 직원들 사이에도 실력 차이가 좀 있는 듯 하고. 여전히 친절해서 좋긴 했지만 고기 맛은 의아했던. 테스트를 위해 다시 들리게 될지 아니면 다른 고기집을 찾게 될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첫방문때 서비스로 주셨던 김치찌개는 진짜 농담아니고 고기가 반이었는데 이번에 돈 내고 시킨 김치찌개는 그만큼은 아니었다. 역시 오픈 했을때라 좀 더 신경을 썼던 것일까.

아직까지도 어떤 영역에서 일가를 이루지 못한채 꿈만 꾸고 있는 듯한 내가, 여전히 글이나 끄적이며, 낙서나 즐기며, 사진에나 목숨걸고 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맘에 드는 그림 한장, 맘에 드는 사진 한컷, 맘에 드는 글 한줄이면 만족감이 공갈빵처럼 부풀어올라 어쩔 줄을 모르는 철없는 나는 대출도 모르고, 주식도 모르고, 부동산도 모르는 경제적 미성년에 불과해 그렇게 우스워보이나 보다. 일년 내내 책 한권도 사지 않고, 무슨 차를 타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에만 집중하는, 한줄의 글도 읽고 쓰지 않는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나누겠는가 하는 자기 위안을 하며 나를 지켜나가고 있지만 사실 나도 알고있다. 내가 얼마나 모자란 삶을 살고 있는지. 그래도 나는 이런 삶이 만족스러우니 그대들이 나를 바꾸려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