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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한 날이다. 4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박정희의 신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나라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그를 죽였던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가 비공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관련된 컨텐츠도 꽤 많이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네티즌들이 1026을 희화화하며 만들어낸 게 탕탕탕절이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쐈던 그 총소리를 빗대어 탕탕탕절이라고 부르며 탕수육을 먹는 날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벤트는 아니지만 이날만 되면 하루 종일 탕수육 이야기를 듣게 되니 관성에 끌리듯 시켜먹곤 한다. 오늘은 특별히 박정희가 좋아했다는 시바스리갈(비록 12년산 포켓 사이즈이지만.)도 한 병 사서 같이 마셨다. 탕수육과 위스키가 꽤 잘 어울린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기에 가볍게 먹을 위스키를 고르다가 만만한 시바스리갈을 발견한 것일 뿐 그의 죽음을 비웃기 위해 고른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먹는 동네 중국집의 탕수육의 맛은 훌륭했으나 시바스리갈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냥 제임슨을 사 오는 건데 하는 후회가 강하게 밀려왔다. 알코올 향이 진하게 느껴지며 풍미는 약하고 스파이시하기만 한 이 술을 박정희는 대체 왜 좋아했던 걸까? 진짜 좋아하긴 한 걸까? 도저히 니트로 마셔낼 자신이 없어 하이볼로 말아놓고 나니 그나마 먹을만해졌다. 얼음과 토닉워터에 희석되어 본연의 맛은 느낄 수도 없는 시바스리갈을 홀짝거리며 탕수육을 먹고 있는데 노태우의 사망 소식이 TV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김대중도, 김영삼도, 김종필도, 노태우도 모두 가고 박정희 사후 정계를 뜨겁게 달궜던 그 시절의 주역 중 남은 건 전두환 밖에 없다(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산다더니....). 그를 무척이나 존경하는 듯한 짜장 애호가에 의해 요즘 다시 핫해진 그 사람 또한 조만간 시간의 지평 너머로 사라져 갈 것이다.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사람들을 죽였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눈 가린 경주마 같은 정치인들, 수많은 흠결과 악의로 가득 찬 이들이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러셀 해놓은 눈밭을 뒤따라 걷고 있다. 그들은 자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걸까? 깊어가는 가을 저녁 시간 속으로 스러져간 정계 요인들의 덫없는 삶을 생각하며 탕수육을 먹고 있자니 소소하기 그지없는 내 삶이 다 썩어버린 속과 다르게 말쑥하게 차려입고 대권을 노리는 그들보다 더 풍요로워보인다. 아무래도 술을 너무 과하게 마셨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