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yeong Log

코인러버의 통영로그 - 겨울 초입 두꺼비 오뎅

coinlover 2024. 11. 20. 13:18

 
 
한국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담임교사에게 내려진 천형, 매년 돌아오는 정리되지 않는 단어들과의 싸움-생기부 작성. 특기할 요소가 전혀 없어도 뭐라도 써내야 하는 이 괴로움을 동종 업계 사람이 아니면 어찌 이해하겠는가? 요즘 애들 말 안 들어서 가르치기 힘들다는 건 이제 누구나 알고 있지만 도무지 뭘 써야 할지 알 수 없는 애들에 대해서도 좋은 말, 가능성으로 가득한 말을 두드려가야 하는 생기부 작성의 괴로움은 모를 것이다. 수업하고 생기부 쓰고, 점심 먹고 생기부 쓰고, 청소하고 생기부 쓰고, 공문처리하고 생기부 쓰고.... 생기부로 점철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해 집 컴퓨터 앞에 앉아 생기부 쓰려다가 갑자기 짜증이 너무 나서 에라 모르겠다며 두꺼비 오뎅으로 피신했다. 날이 쌀쌀해지면 생각나는 뜨끈한 국물, 하지만 지나치게 뜨거우면 안된다(혀 대고, 입천장 까지니까. 나는 고양이혀.). 그런 면에서 가장 적합한 게 오뎅. 기린 생맥주를 시켜놓고 나오기도 전에 오뎅 두 개를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살짝 덜 익은 듯 베어물 때 저항감이 있다. 참 좋다. 나는 뭐든 너무 뜨겁거나 푹 익은 건 싫어한다(라면도 꼬들파). 나쁘지 않군. 나쁘지 않아라고 중얼거리고 있으니 서빙되어 나오는 기린 생맥, 쌀쌀해진 날씨를 피해 따끈한 실내에 들어와 뜨끈한 오뎅으로 데워진 목에 때려 붓는 차가운 생맥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도락. 크아아아아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이쯤 되니 생기부 관련된 스트레스는 어디로 갔는지 모를 지경이다. 가라아게를 주문하고 생맥을 한잔 더할까 고민하다 사케 잔술로 변화구를 던졌다. 달달한 사케는 어찌 마셔도 맛있지만 이런 날씨라면 히레사케가 딱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쪽으로 생각이 미치니 잊을 수 없는 은사님 전수근 선생님이 떠올랐다. 없이 사느라 모든 부분에서 경험이 일천했던 내게 세상의 많은 부분을 접하게 해 주신 분이다. 내 인생의 첫 히레사케도 전수근 선생님께서 사주신 것. 복어 지느러미를 태워 따뜻한 사케에 넣어 먹는 걸 보고 대체 저게 무슨 짓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 묘한 풍미에 빠져 겨울만 되면 사주는 사람 없어도 한잔씩 마시곤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 2년 찾아뵙지 못한 우리 은사님, 생기부 빨리 끝내고 생맥이라도 한잔 대접하러 넘어가야겠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는지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년부에 진고 시절 제자가 동료로 앉아 있다. 전수근 선생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만큼 안 되겠지만 나쁜 기억으로 남지는 않게 잘 챙겨야겠다. 조만간 함께 히레사케나 한잔 할까? 통영 히레사케 맛집 추천받습니다. 셰프장 메뉴에서 얼핏 히레사케를 본 것 같기도 한데.  
 
 

 
생기부로 괴로워 하는 전국의 모든 담임 교사들이여!
 
술잔을 높이 들어라~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