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6/01 (22)
코인러버의 다락방
카메라를 들고 있기만 해도 경계의 대상이 되는 시대다.길을 걷다 우연히 본 회사 간판이 예뻐서 셔터를 눌렀을 뿐인데, 경비 아저씨가 헐레벌떡 뛰어오셨다. 어디서 나왔느냐고 묻는 얼굴엔 긴장이 묻어 있었다. 그냥 지나가던 사진가라고, 간판이 예뻐서 찍었다며 사진을 보여드리자 그제야 표정이 풀어졌다. 언론사에서 기사거리를 찾으러 온 줄 아셨던 모양이다.초상권 문제가 예민해진 뒤로는 시비가 걸릴 법한 사진은 애초에 찍지 않는다. 길을 걸으며 마음을 끄는 사물들을 담는 일이 내겐 큰 즐거움인데, 그 소소한 즐거움마저도 점점 조심스러워지는 시절이다.
군산에 있는 판상절리와 윤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페이퍼웨이트. 평소 좋아하는 콘크리트 소재라는 점이 관심을 먼저 끌었다. 군산 바닷가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표면에 남은 결을 보는 순간 고성 상족암의 절리가 떠올라 자연스럽게 마음이 갔다. 바다를 직접 보지 않아도 기억 속의 풍경이 물건을 통해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마감이 아주 정교하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만져보면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다. 특히 펜을 놓는 부분은 매끄러워야 할텐데 돌기같은 것들이 있어 펜 표면에 상처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형태와 질감이 주는 인상이 좋아서 결국 마음에 남는다.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콘크리트라는 재료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문진이 지닌 적당한 무게감은 널뛰듯 오르내리는 ..
작년 말에 만나 술 한잔을 하던 자리에서 형이 파버카스텔 만년필을 하나 주겠다고 했다. 그때는 자연스럽게 이모션 정도를 떠올렸는데, 며칠 전 실제로 받아 들고 보니 그라폰 기로쉐였다. 이미 가지고 있던 그라폰 클래식 오리지널 퍼남부코와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았다. 기로쉐는 전체 길이가 약간 더 짧았고, 캡은 스크류 방식이 아닌 스냅온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띈 차이는 닙이었다. 오리지널이 18K 투톤 닙인 데 비해, 기로쉐는 같은 18K이지만 루테늄 코팅의 원톤 닙을 사용하고 있었다. 같은 그라폰 라인업 안에서도 이렇게 디테일에 차이를 두는 걸 보니, 파버카스텔도 나름 치밀한 장사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물을 접하기 전에는 그저 배럴 소재만 다른 정도로 여겼는데, 막상 비교해 보니 인상이 꽤 다르다..
접시가 갖고 싶어서 드립백을 사는 남자. 나란 남자 그런 남자. 그나저나 모모스드립백 나만 사용하기 불편한가? 이게 전통적인 드립백 디자인에 비히 딱히 좋은게 없는 듯 한데. 대단한 커피 전문가들이 만든거니까 분명 무슨 장점이 있을텐데....
활어회가 주류인 통영에 웬일로 숙성회 전문점을 표방하는 가게가 문을 열었다. 죽림 성숙회. 가게 이름을 짓는 데 큰 고민을 하지는 않은 듯한, 아주 직관적인 작명이다. 가까운 곳에 이런 집이 한 군데쯤 생겼으면 하고 막연히 바라던 차였기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른 일정들을 뒤로 미룬 채 급히 다녀왔다. 죽림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주차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게 인테리어는 딱히 언급할 만한 부분이 없다. 그냥 깔끔한 포차 콘셉트다. 공간의 분위기를 즐기러 가는 가게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날은 단체 손님이 많았는데, 특히 몇몇 여성 손님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도떼기시장 한복판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음식 사진도 제대로 남기고 싶었지만 자리가 좁고 상황도 여의치 않아, 대충 기록용으로만 찍고..
얼굴본지 오래됐다고 정희형과 수경씨가 진주에 넘어 오기로 했다. 수경씨는 일때문에 좀 늦기로 했기에 정희형부터 만났는데 배원장님 호출하니 바로 합류. 동생들한테 치이다가 오랜만에 형님을 만나니 좋으셨던듯 표정이 매우 밝아 보였다 ㅋ 여름 시즌부터 마셔보려고 했지만 한겨울에야 마시게 된. 오렌지 이즈 더 뉴블랙. 오렌지주스랑 에스프레소가 이렇게 찰떡궁합인지 몰랐다. 셋이서 저녁먹으러 카츠카키에 갔다. 상등심카츠는 처음 먹어봤는데 적당히 느끼한데다 부드러운 살코기에 비계의 쫄깃함이 더해진 식감이 좋았다. 확실히 기술적으로는 대돈여지도에 오를만한 맛집이다. 밥 먹고 수경씨 커플을 만나 다원으로. 이날 무엇보다 감동이었던 건 꿈에도 그리던 긴카코겐을 다시 만났다는 것. 아쉽게도 병입제품은 아..
소니 F717. 내 삶에서 이것보다 더 간절히 갖고 싶었던게 있었던가 싶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2001년의 나에게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갖고 싶어했던 것들은 어떻게든 다 가졌다. 시간이 다소 많이 걸렸을뿐이지.
문구 잡지 온 더 데스크가 어느새 9호까지 나왔다. 처음에는 과연 이런 잡지에 수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펀딩이 계속 이어지는 걸 보니 코어 문구인층이 생각보다 꽤 두텁게 형성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문구야말로 소확행의 대명사 아닌가. 여러 분야의 컬렉팅에 도전해 봤지만, 결국 늘 마주치게 되는 한계는 공간이었다. 부피가 큰 것들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문구는 탐미적인 측면과 현실적인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꽤 이상적인 수집 대상이다. 사실 몇몇 특출난 제품을 제외하고는 문구류에서 감동적인 기능성을 느껴본 적은 많지 않다. 만년필도, 볼펜도, 샤프도, 칼도, 가위도, 노트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결국 비슷한 감각으로 쓰이게 된다. 물론 내가 전..
이번 겨울에는 비행기 타고 어디로든 떠나보려고 했다. 해외여행은 코로나 이전에 오사카 교토가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한번 나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2년 전에 제주도에 일 보러 가면서 비행기를 타보긴 했지만.) 제일 현실성 있는 여행지는 돗토리였다. 비용이 정말 저렴했고 무엇보다 그 유명한 사구와 우에다 쇼지 사진미술관은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으로 계획은 무산됐고 집에만 있자니 답답해서 만만한 부산으로 잠시 나들이를 다녀왔다. 부산 가서 처음 들린 곳은 전포동 지즈. 몇 년 전부터 일식 카츠 열풍이 불더니 이제는 일본의 이름난 맛집들 못지않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쉴새없이 치고 나오는 중, 이곳도 그런 신흥 강자 중의 하나다. 웨이팅..
예전에 즐겨갔던 죽림의 일식집 메바에소의 사장님께서 오랜만에 통영으로 복귀하셔서 유수정스시라는 업장을 내셨다. 시내에서는 거리가 꽤 있는 편이라 대중교통으로는 무리, 하지만 주차가 매우 편하니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면 통영 시내에서 먹는 것보다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해산물부심이 넘치는 통영이지만 의외로 이만한 수준의 일식 요리를 내놓는 곳은 많지 않다. 메바에소 시절에도 탈통영급 요리들과 가게에 구비된 다양한 주류에 반해서 단골이 됐었는데 지금은 오죽할까. 사장님께서 가게 오픈할 때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다. 실력의 포텐셜이나 개인적인 욕심은 이것보다 훨씬 깊은데 통영 사람들의 성향과 가격저항성 등을 고려해 먹히지 않을 듯한 음식, 주류는 과감히 쳐내고 좀 더 캐주얼한 면을 강조하신 것 같다. 그 점..
바쁜 일 대충 정리해놓고 모처럼 여유롭게 낮술을 즐겼다.
인스타에 누군가가 올려놓은 로트링 600 로프트 한정판 사진을 보고 '색이 완전 예쁘다! 이건 사야해!'하며 판매처를 검색해봤는데 국내샵들 가격은 미쳐있었고 해외직구 하기도 애매해서 포기. 갖고 있는 샤프나 잘써야지 하며 쌓아놓은 것들을 정리하다보니 언젠가 선물받은 로트링600 박스에 로프트 로고가 박혀 있었다. 설마하고 열어봤더니 바로 그 노란색 한정판 ㅋ. 로트링 600을 이미 두자루 갖고 있어서 선물받은 건 개봉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했던 것이다. 한정판을 선물 받은 걸 모르고 고만 고만하게 감사했던게 괜스레 미안해졌다. 더 격렬하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어야 하는데.... 어쨌든 방에 물건이 넘쳐나다보니 갖고 있는것도 모르고 또 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한번 도를 넘은 물욕을 반성하며 올해는 정..